닭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동쪽 창호지 너머로 희붐한 새벽빛이 스며들고, 마당의 우물가에서 어머니가 두레박을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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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시(卯時) 무렵 — 안채 건넌방 책상 앞 🔍
새벽 닭이 두 번째로 울 무렵, 나는 건넌방 좁은 책상 앞에 앉아 천자문 귀퉁이에 한글 낱말을 몰래 받아 적었다. 서당 훈장님께 배운 한자 아래에 조심스레 언문을 병기해 두면, 뜻이 훨씬 선명하게 머릿속에 박힌다. 밖에서는 어머니가 아침 죽 끓이는 소리가 들리고, 콩알 볶는 고소한 냄새가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먹을 갈 때마다 벼루에서 피어오르는 묵향이 코를 간질였고, 나는 붓대를 꽉 쥔 채 오늘은 꼭 '하늘 천(天)' 자를 반듯하게 써 내겠다고 다짐했다. 창호지 위로 올여름 유독 길게 우는 매미 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신시(申時) 무렵 — 동네 우물가 빨랫돌 근처 🔍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신시 무렵, 나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삼베 수건 두 장을 들고 우물가로 나갔다. 동네 아주머니 셋이 빨랫돌 위에 옷감을 두드리며 경성 쪽에서 넘어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목소리를 낮추다가도 이따금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이 어딘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아는 척하지 않고 빨래를 헹궜다. 찬 우물물이 손등을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등 뒤 뙤약볕과 대비되어 오싹할 만큼 시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좁은 흙길에 봉숭아 꽃물이 든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이 여름이 어딘가 모르게 묵직한 공기를 품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일기는 실제 기록 검색 없이, 시대 지식과 고증 감각을 바탕으로 상상해 쓴 창작 스토리입니다. 실제 사건·인물의 기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