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40분, 서울 창신동 청운연립 302호 안방에서 빗물이 처마 끝 양철통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선풍기는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눅눅한 이불 위로 광복절 아침의 흐린 빛이 번졌다.
오전 7시 10분, 청운연립 옥상 🔍
오전 7시 10분, 청운연립 옥상에서 나는 빗물에 축축해진 난간을 헝겊으로 닦고 태극기 깃대를 단단히 묶었다. 골목의 붉은 벽돌집들에도 젖은 깃발이 하나둘 걸렸고, 멀리 종로 쪽에서는 휴일 아침 버스가 물웅덩이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른여덟 살이 된 올해는 인쇄소 주문이 크게 줄어, 쉬는 날에도 장부부터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아내가 보온병에 보리차를 담아 건네며 오늘만큼은 얼굴을 펴라고 했고, 나는 미안한 웃음으로 식은 밥에 물을 말아 김치와 함께 먹었다. 라디오에서는 광복절이면서 정부 수립 쉰 해를 맞는 날이라고 했는데, ‘쉰 해’라는 말이 내 나이보다도 묵직하게 방 안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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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40분, 을지로 청마인쇄소 🔍
오전 11시 40분, 을지로 3가 청마인쇄소에서 나는 셔터를 반쯤 올리고 전날 말려 둔 전단지 묶음의 눅눅한 가장자리를 살폈다. 기계에 밴 잉크와 기름 냄새가 서늘한 작업장에 남아 있었고, 벽걸이 선풍기 아래에는 외상값을 적은 장부가 펼쳐져 있었다. 옆 철물점 박 사장이 종이컵 두 개와 보온병을 들고 와 함께 라디오 중계를 들었는데, 오늘 경축사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키자는 ‘제2의 건국’이 제창됐다고 했다. 나는 거창한 말보다 다음 달 종잇값과 직원 한 명의 월급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는 말 자체는 오래 붙잡고 싶었다. 우리는 자판기 동전 몇 닢도 아껴야 한다며 보온병 커피를 나눠 마시고, 월요일에 들어올 소량 주문의 판을 미리 정리했다. 셔터 밖 젖은 아스팔트 위로 태극기를 단 시내버스가 지나가자, 인쇄기 롤러에 고인 검은 잉크가 잠깐 푸른빛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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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20분, 종묘앞 충무분식 🔍
오후 7시 20분, 종묘앞 충무분식 창가 자리에서 나는 아내와 김이 오르는 잔치국수 한 그릇을 나누어 앞에 놓았다. 작은 텔레비전은 낮 경축식 장면을 다시 보여 주었고, 손님들은 숟가락을 멈춘 채 새 출발이라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 맞은편 신문 가판대에는 이달 초 금강산 유람선 관광사업 계약 소식이 실린 신문이 남아 있어, 아내는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함께 산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당장 여행비를 셈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그 약속만은 외상 장부와 다른 칸에 적어 두고 싶었다. 식당을 나설 때 비는 그쳐 있었고, 젖은 골목의 전구 불빛 아래서 아내의 손을 잡으니 하루 종일 가슴을 누르던 걱정이 조금 가벼워졌다. 밤 9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 호출기를 식탁에 내려놓고, 월요일 주문을 지켜 낸 뒤 작은 적금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이 일기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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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diary is a work of fiction based on historical records and period research. Events with available records link to their original sources, while eras without surviving records are reconstructed through research-based imagination.